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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이야기 통! 통!/남동 문학관

(남동마당) 구민마당 행복먹으러 가는 길

(남동마당) 구민마당 행복먹으러 가는 길

 

행복먹으러 가는 길


글 김혜경 (논현동)


방학이면 큰 가방 하나 메고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갔다. 아니 가야 했다. 새어머니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나는 오히려 그 편이 더 좋았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비포장 도로라 가는 내내 덜컹거리며 흙먼지가 일어 멀미가 나도 창문을 제대로 열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방학만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할머니 집에선 행복을 먹을 수 있어서 그랬으리라.

우물가 큰 집이 우리 할머니 댁이다. 아래채 작은 흙방은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고 아늑했다. 노란빛 작은 전구를 똑딱 켜면 누구와도 밤늦도록 얘기를 나눠도 좋았다. 할머니 댁에서 식모살이 하던 언니 심부름으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뜻 모를 유행가 가사를 참 많이도 베껴 적었다.

집에선 나는 새어머니께 고분고분하지 않은 천덕꾸러기였지만 할머니 댁에선 그냥 귀염둥이 손녀일 뿐 이였다. 청소도, 설거지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눈치 볼 일도 없었다.

오전에 할머니 따라 다니면서 닭 모이 주면 되었고, 저녁이면 재미삼아 큰 가마솥에 불 때주면 그만이었다. 한 번씩 생색내며 일하는 언니 심부름하러 담배가게 다녀오고 오는 길엔 과자하나 덤으로 챙기기도 했다. 여름이면 감나무 아래 큰 평상에 배 깔고 누워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들이키는 게 제일로 좋았다.

나는 도시에서 온 얼굴이 하얀 아이였으니 동네 촌놈들 죄다 불러놓고 자랑하기 일쑤였다. 하기 싫었던 방학 탐구생활도 그 친구들 앞에선 뽐내면서 재미있는 척했다. 방앗간 집 아들이 주산학원 다닌대서 할머니를 졸라 하루에 4번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가서 주산학원도 다녔었다.

할머니는 나만 보면 눈시울을 붉히셨다. 내 탓이다. 미안하다… 엄마의 빈자리에 늘 허전해 하는 내가 안쓰러워 그려셨으리라.

내가 6학년이 되던 여름방학. 여느 때처럼 할머니 댁에서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작은 방으로 우리 남매를 부르셨다. 친어머니께서 양육권을 달라 하신 모양이었다.

새어머니와 많이 힘들어 하는 내 얘길 들으시고 몇 차례 전화를 하셨단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대답은 완고하셨다. 대학생이 되면 생모와 만나도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울면서 뛰쳐나갔고 그런 날 할머니께선 말없이 보듬어 주셨다. 그렇게 마음이 고팠던 나는 할머니 품에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냈다.
결혼을 하고 내게도 고부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참 많이도 힘들었다. 내게도 친정엄마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고 속상한 마음을 할머니께 그대로 전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매주 2번씩 요일을 정해놓고  시어머니께 전화 드릴 때 아이들을 앞세웠다.

어머님이 아닌 할머니로. 한 달에 두어 번 찾아 뵐 때도 나는 가기 싫었지만 할머니 댁에 놀러 가자, 할머니 댁에 가서 물총놀이 하자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머님도 이제는 많이 아껴주시고 남편과도 더 가까워졌다. 시댁에 가서도 안방에 떡 하니 드러누울 수 있고 맛나는 반찬은 싸달라고 조를 여유도 생겼다.

가끔씩 시어머님을 할머니라 불러서 화들짝 놀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가오는 주말이면 나는 아이들과 할머니(시어머님) 댁에 간다. 아이들의 할머니시지만 그래도 정겹다.

  

 ※ "남동문화 2012년 7/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