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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이야기 통! 통!/남동 문학관

(남동마당) 구민마당 장화아줌마, 할머니댁

(남동마당) 구민마당 장화아줌마, 할머니댁

 

장화 아줌마
글 윤희자 (만수3동)

“OO동에 살 때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살았지 이 말은 삶이 힘들었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한 때 내 별명은 장화 아줌마였다. 농사짓기 힘들다 하지만 그 중 힘들기로 첫 손가락을 꼽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을 때 얻은 별명이다. 비온 뒤 오이 자라듯 한다는 말이 있듯 오이 밭고랑은 항상 질척하여 늘 장화를 신어야 했다. 그 오이를 근처 시장에 내다 팔 때 장보러 나온 아줌마들로부터 듣던 장화 아줌마, 몸도 마음도 무거운 짐을 진 듯 참 고단했었다.

지금도 창대시장 농협 앞이나 모래네 시장 버스 정거장 근처 노점에 가면 밭에서 직접 딴 오이나 호박 열무 등을 파는 아낙들이 있다. 햇볕에 탄 얼굴, 푸스스한 파마머리, 그리고 밭에서 서둘러 온 듯 장화를 신은 모습도 한두 명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 정지용 시인이 차마 꿈에도 못 잊겠다던 그 아낙들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오이 한 소쿠리를 샀다. 후덕한 아낙은 덤을 주려하고 나는 식구가 적다고 사양한다. 오이 한 개 기르려면 흘린 땀이 얼마인데, 겪어봤으니 귀한 것을 안다. 지나치게 알뜰한 주부가 채소 값을 깎고 덤을 흠씬 받으려고 야박을 떠는 모습에 친동생 일인 듯 울컥한다.

비료값, 종자값, 그 외 많은 농자재 대금들로 아마 대출이 있겠지. 혹 소작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그 어깨가 얼마나 소슬할까. 아낙의 음전한 표정이 내 눈엔 무겁게만 보인다.

꿈인 듯 아득하게도, 엊그제 일인 듯 명료하게 떠오르는 기억하나, 할 수만 있다면 없던 일인 듯 잊고 싶은데 다친 상처에 흠집이 남듯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

그즈음 몇 년 간 실농을 하고 농사꾼에게는 자식 같은 땅을 기어이 놓치고 말았다. 친정어머니께서 세 살 된 둘째딸을 홍역으로 잃고 가슴앓이 하실 때 어미가 못나 그랬다는 자책감과 부끄러움으로 한동안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땅을 잃고 나 또한 어머니처럼 부끄러웠다. 심한 낙담과 참담함으로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음식조차 들 수 없었다. 귀에서 벌레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더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희뿌연 잿빛으로도 보였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 응답하듯 정상을 잃었다. 그렇게 일 년, 이년, 삼년, 그 심한 고통도 차차 사그러들고 운명론자처럼 팔자거니하며 평정심을 찾았다.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아침, 한 어린 아이가 노란 장화를 신고 엄마가 받쳐 준 우산 아래서 걸어간다. 자박자박,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을 보니 또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가슴 속 한이 아직 떠나지 않았나보다. 

할머니댁

글 박진영 (새말초등학교 6학년)


밤 한 톨 친구하자고 톡 때리고
홍시가 친구하자고 툭 때리고
와르르 별들이 안기고
밤나무도
감나무도
별들도
심심했나 보다
내가 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나 보다
혼자 사시는 우리 할머니처럼.

 

 ※ "남동문화 2012년 7/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