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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이야기 통! 통!/남동 문학관

고향

고  향 

남동구청 총무과 / 신동석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자주 가보지 못하고 산다. 엎어지면 바로 코 닿을 데에 있는데도 잘난 붙박이 직장생활과 내 게으름은 어느덧 십 수 년의 세월이 물처럼 떠내려 가버린 동안 나와 고향을 구만리로 떼어 놓았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것도 세상에서 출세하지 못한 파리한 지금의 내 모습을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까봐 차마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다.

그저 죄인처럼 먼발치에서 서서 가끔 어머니 생각에 잠겨 들판을 내려다보았던 야트막한 동산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얼마 후 지루해지면 그냥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고향은 그런 내가 몹시 못마땅하기라도 한 건지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나를 반겨하지 않는 눈치다.

작년 가을, 수북한 논벼 사이로 혼자서 차를 몰고 마을 앞 들판을 지날 때에도 고향은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릴 적 물장구를 치고 놀았던 쇠부 뚝 다리위에서 멀찌감치 동산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에도, 고향은 강산이네 어머니 봉분 위로 비스듬히  뻗은 몇 그루의 굵은 노송들로 몸을 덮은 채 동그랑재 너머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쌀쌀맞게 돌아누워 있었다.

어쩌다 한번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렇게 등을 돌리고 홀대하는 고향 앞에서 나는 벌겋게 황토가 드러난 고향의 굽은 등허리마저 떳떳이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엉겁결에 석현이가 빠져죽은 되부 뚝 다리 앞으로 정신없이 걸어가서 하루 종일 방앗간 주변을 얼쩡대다가, 멀리 박촌 너머로 해가 기울 즈음, 비로소 노을 비낀 들판을 가로질러 부랴부랴 도망치듯 고향을 빠져나왔다.

고향이 지금, 왜 나를 미워하고 있는지, 왜 화가 나 있는지 나는 안다. 어쩌다 생각나면 제멋대로,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차를 몰고 쪼르륵 달려와 얼굴만 살짝 디밀고 하루 종일 먼발치서 서성이며 고향의 치마 자락만 밟다가, 해가 넘어갈 즈음, 서둘러 도망치는 나를 고향이 반겨할 리 없다.

어린 핏덩이가 어미 없이 놓인 것이 불쌍해 들판을 앞마당으로 내어주고 파란 하늘로 꿈꾸게 하였더니 그렇게 키워준 고향의 은덕은 아랑곳없이 제멋대로 제 잘난 맛에   사는 나를 고향이 좋게 생각할 리 만무다.

고향은 지금, 그런 못된 나를 호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키워주고 품어준 고향을  버리고 불나방처럼 도시의 불빛을 좇아 떠나버린 한낱 버러지와도 같은 나를 다시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내 허물과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고향이기에 어쩌다 내가 얼굴한번 내미는 것조차 고향은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고향 앞에서 목이 곧지 못하다. 어쩌다 일 년에 한두 번쯤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면 객지에 나갔다 몇 년 만에 무일푼으로 염치없이 부모 앞에 나타난 불효자처럼, 고향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던 날, 넉자짜리 자개장롱 두 짝에 솥단지와 항아리, 변변찮은 부엌살림과 옷가지들이 잡동사니처럼 너저분하게 실린 짐칸에 오르면서 나는 차라리 속이 후련했었다.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해수병으로 숨을 제대로 통치 못하셨고, 오십이 넘도록 우리 집에 얹혀살았던 삼촌은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몸져누운 아버지 앞에서  온갖 행패를 일삼았다.

새벽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꼬질꼬질한 이불 홑청으로 몸을 감싸고 일 톤짜리 봉고트럭 짐칸에 실려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겨우 마을을 빠져나오던 날, 내 눈엔 저절로 눈물이 괴었다. 마음은 시원한데 어찌된 일인지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러나왔다. 마을 어귀를 빠져 나올 때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삼촌의 얼굴도 계속해서 내 약한 눈물샘만을 건드렸다.

낙우송이 잔잔히 늘어선 고즈넉한 마을길을 나와 신작로에 들어설 즈음,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노라고 몇 번이고 나는 마음에 굳은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삼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해마다 가을만 돌아오면 나는, 쉰 해를 모질게 넘어온 때 묻은 안경 속으로 냄새나는 거름 속을 뒤지듯 고향을 더듬고 산다. 수수깡처럼 마른 내 영혼으로 어머니의 젖무덤을 더듬듯 한없이 고향을 그리워한다.

가을에는 그렇게 고향이 보인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고향이 보인다. 어머니가 꽃상여를 타고 떠나신 금빛 들판이 보이고 지게를 괴어놓고 벼를 베는 늙은 아버지 모습도 보인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게딱지만한 오두막집이 보이고 쑥부쟁이 촘촘한 고샅을 따라 아버지가 소를 몰고 걸으셨던 좁다란 논길도 보인다.

세월이 더하면 더할수록, 고향은 커다란 보름달이 되어 어두운 내 마음에 더욱 더 환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덧없이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사는 내 마음은 고향 앞에서 한없이 죄스럽고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