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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이야기 통! 통!/남동 문학관

불협화음의 자취생활

불협화음의 자취생활

글 서지원 (논현동)
 

대학교 1학년, 기숙사 생활이 대학생인 내 삶을 구속한다는 생각에 동갑인 룸메이트 친구와  자취방을 얻어 TV 1만  5천원과 냉장고 3만원을 구입하여 자취를 시작하였다. 자취생활을 시작한 지 한달여 만에 자취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룸메이트는 자기가 설거지 할테니 밥 준비는 나한테 하라고 했다. 반찬이라고는 계란후라이와 소세지부침밖에 할 줄 몰랐기에 매끼마다 반찬 걱정을 하게 되었고, 한 달 생활비를 5만원씩 내고 생활을 하였지만 생필품과 야채, 과일을 사면 한 달 살기에 무척 빠듯했다. 그 당시 우리가 먹는 가장 비싼 반찬은 냉동된 감자튀김을 튀겨서 케찹을 뿌려 먹는 것이었다. 반찬을 만들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가 집
에서 가져오는 반찬과 고향에서 택배로 김치와 반찬이 올라오는 날은 새로운 반찬을 맛보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룸메이트는 TV와 책을 즐겨보며 야행성 생활을 좋아했고 나는 11시 정도만 되면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불빛과 텔레비전 소리에 잠이 드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룸메이트는 하루 종일 티비만 보고 방안에서 꼼짝 안 해도 뒹굴뒹굴하며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사람들을 만나야 기분전환이 되었다. 룸메이트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불편해 했기에 친구들을 밖에서 만나거나 다른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7만 원짜리 중고세탁기를 살 때도 룸메이트는 빨래를 자기가 다 빨테니 사지 말자고 하여 청바지부터 니트옷, 속옷까지 모두 손빨래를 하는데 1시간 정도를 고생을 하였다. 나는 손빨래의 수고를 알기에 세탁물을 가지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빨래를 하기도 하였다. 결국 3년 6개월 자취하는 동안 세탁기를 사진 않았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가 조선시대를 사는 것도 아닌데 모든 옷을 손빨래를 해서 입다니….

룸메이트와 불협화음 속에서도 유일하게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락실 가는 것. 오락실에 가요가 나오면 발을 움직이며 화살표를 밟는 펌프라는 게임이 있었는데 1회에 500원 하는 그 게임을 하기 위해 집에서 20분을 걸어 오락실에 갔었다. 심하게 마음이 맞았던 때는 일주일 내내 방앗간앞 참새처럼 오락실에 갔었다. 히든캐치라는 틀린그림 찾기도 둘이 앉아서 불꽃 튀기며 게임을 하고 게임기에 우리 이니셜을 남기며 우린 마음이 잘 맞는 룸메이트야라는 말을 했었다.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애 둘인 엄마가 되었는데 그 친구는 아직도 싱글로 지내고 있다. 서로 자라온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 이렇게 계속 지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했었지만 친구이기에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희생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음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그 때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은 추억을 선물해준 그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해야겠다.

 ※ "남동문화 2012년 5/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