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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 이야기 통! 통!/남동 문학관

보고 싶은 얼굴

보고 싶은 얼굴

 글 이순례 (만수4동)

3년 전 일이 엊그제 같이 아직도 제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언니와 둘이서 처음 객지생활을 시작한 주인집이 너무도 그립고 그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고3때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기위해 객지생활을 시작한 집이기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순진한 시골처녀가 처음으로 부산이라는 곳으로 취업을 위해서 객지에 오니 설레이기도 했지만 힘들었던 주인집 부엌방에서의 첫 사회생활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가족들이 생각납니다. 한 사람이 누워도 작고 컴컴한 방에서 저희 언니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주인아주머니는 저를 참 예뻐하셨지요. 주인집하고 부엌도 같이 쓰면서 제가 가끔씩 주인집 설거지도 해주고 그래서인지 주인아주머니는 저희엄마한테 저를 며느리 삼겠다고까지 하셨어요.
그러나 저는 어렸고, 저희 어머니는 전혀 시집보낼 생각을 안했습니다.
주인집 아들은 그 당시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여자 친구는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데릴사위를 원하는데, 주인댁 아들은 큰아들이었고 아주머니가 반대해서 군대 제대 후 헤어졌어요.
아주머니가 저하고 연결해주려고 약수터 산책도 같이 가게 해주셨는데 저도 속으로는 좋았습니다. 진짜 주인집 아들은 정말 착하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아직 없었고, 아버지가 잠깐 배를 탔는데 아들이 직장 구하는 동안 아버지 따라 배를 타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묵호항으로 배를 타러 간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배에서 쓰러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슬픈 일도 함께 겪으며 주인집과 가까워졌습니다.

주일이면 주인집이 교회 가고나면 몰래 카스테라 만들어 먹고, 주인아주머니 들어오면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혼날까봐 숨죽이고 골방에서 불도 켜지 못하고 지냈던 그 시절이 그래도 평생추억으로 남습니다.
주인 아들과는 서로 말 한마디 못하고 세월은 흘렀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한번 찾아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당신 며느리 앞에서 제가 며느리로 들어왔으면 좋았을 걸 하시는 바람에 제가 당황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주인아주머니와 가족들이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네요. 건강히 잘살고 계시겠죠.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더불어 옆방에 세들어 살던 언니 두 명도 이름은 잘 모르지만 합천이 고향이었던 언니도 보고 싶어요. 그 언니도 두 자매가 같이 살았고 지금쯤 50대 중후반쯤 되었을 텐데 무척 보고 싶습니다.

 ※ "남동문화 2012년 5/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