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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선율 속에 예술을 꽃 피우다 - 국악인 이화영

가야금 선율 속에 예술을 꽃 피우다 - 국악인 이화영

인천예술인협회 국악분과 회원인 이화영 씨는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 그는 가야금을 켜는 무대라면 그곳이 노인정이든 교회든 장소에 관계 없이 예술의 혼을 불태운다. 그는 가야금예술에 대한 신념이 있다. 그에게 있어 예술가의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 끝없이 배우고 정진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봉사에 기쁨을 느끼며 가야금 사랑이 곧 자신의 삶이며 꿈인, 진정한 국악예술인 이화영 씨의 예술세계에 귀기울여본다.

글|사진·정경해 편집위원

국악인 이화영(49세, 간석4동) 씨는 가야금예술가가 된 동기가 독특하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음악실 진열장 안에 진열된 허름한 가야금을 보게 된다. 그리고 대여섯 줄만 겨우 붙어 있는 가야금을 호기심에 튕겨본 것이 그 계기다.“한 줄을 팅~하고 튕기는 순간… 아! 그 아름다운 소리에 완전 반한 거예요. 어떻게 그 허름한 가야금 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하지만 소녀 이화영은 쉽게 가야금을 접하지 못한다. 80년 초 그의 주변에는 민요학원이 없었다. 

혹시 무용을 하게 되면 가야금을 만날까 해서 고1 때까지 무용을 할 정도로 가야금에 대한 집념과 관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고2 때 방과 후 수업에서 가야금을 만나며 KBS 국악관현악단 수석 주자 황병주 선생에게 사사 받고 대학 국악과에 진학, 가야금을 전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렇게 가야금에 대한 열성이 대단한 그였지만 가야금 연주를 계속하지 않는다.
“사실 시작은 일찍 했지만 본격적인 가야금 연주자로서의 활동은 결혼하고였어요.”

대학에서 16년 동안 국악과 조교생활을 하느라 연주활동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 가야금 연주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던 그는 1991년도에 복지회관 민요반을 시작으로 여성문화회관 가야금 반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예술과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 연주활동을 쉬었다는 부끄러움에 가야금 전공자라는 말도 못했지만‘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국악인 홍은주 박사는 이화영 씨의 재능을 높이 사 아낌없는 가르침과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화영 씨는 가야금 연주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굳힌다.
가야금 예술과 봉사 공연은 평생 함께 할 길 이화영씨는 현재 국악회관과 남구청소년수련관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지만 그 자신은 아직도 배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스승인 인간 문화재 이영희(75세) 선생의 가야금예술을 전수를 받고있다.“ 저아직도혼납니다. 가끔연습을게을리 하면 스승님의 역정과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며 웃는다.
“요즘 국악도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퓨전이 더 인기를 끌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많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통 국악만을 고수하면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고 퓨전음악은 재미있어하며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화영 씨의 생각은 전통은 이어져야 하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에 변함이 없다.“ 문화재는 이수를 받아도 순간 이수자의 생각으로 변형이 될 수 있어요.

변형되면 문화재가 아니죠. 끝없이 연습하고 또 해야 합니다. 이영희 스승님의 전통을 완벽하게 전수 받아 그것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예술가의 길은 끝이 없다.”고 말하는 이화영 씨. 그는 요즘 가야금 병창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것에 기쁨이 크다고 한다. 그를 원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 봉사 공연을 펼친다. “홍은주 선생님과 예술봉사와 예술의 길을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며“내가 늙었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공연을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고 말 한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중학생 시절 처음 만난 가야금의 선율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 눈빛을 반짝 이는 이화영 씨. 그가 인간문화재가 되어 전통예술을 전수하는 그날까지 가야금 예술세계가 왕성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 "남동문화 2012년 3/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