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까치의 설날인 섣달 그믐날이고 내일은 우리의 설날이다. 준비할 것도 많고 괜스레 아이 마냥 마음이 설레는 날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호사다마라고 딸아이와 같이 필요한 물건을 사러가자고 했고 아내와 나는 식사를 했지만 늦게 일어난 딸애는 마침 아침 식사 전이라 잠깐 지하주차장에서 애완견 졸리와 기다리기로 했다. 문제는 기다리는 20여분을 아끼려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전문매장에 식사할 동안 갔다오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급히 매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는데 그만 아찔한 순간을 맞이 한 것이다. 
 
  병원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5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병원은 다소 조용했다. 응급실엔 몇몇 환자와 당직 의사, 간호사만 있었고 우리 가족뿐이었다.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X-레이를 찍고 통증이 심해 연휴 끝나고 입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손사래 치며 바로 입원을 했다. 그런데 막상 병실에 들어가니 6인 병실에 이미 3명이 입원해 있었다. 나중엔 안 일이지만 사고 환자와 일반 환자들이 매일 들어가고 나오고 지금은 6인 병실에 비어 있는 침 대가 없다. 남들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가보긴 했어도 이렇게 2주 이상 입원하는 경우는 내 생애에 지금껏 없었다. 그저 급성으로 발생하는 병으로 응급실 처치나 통원치료는 있었어도 말이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병실은 오래된 시설인지라 6인이 입원하기는 다소 협소했고 시설 또한 그리 최첨단이 아니었다. 대도시의 병실치고는 많이 부족하였고 그저 중소도시의 아날로그에다 디지털을 덧칠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병실문화는 낯설고 어리둥절했다. 4명 중 나중에 입원한 나는 그저 숨죽이며 남의 눈치만 보며 따라갔다. 복도 쪽 문가에 위치한 침대는 들락거림에 시끄러웠고 TV 시청 시야권이 좋지 않아 아예 머리를 벽 쪽으로 누워 자야만 했다. 휴대폰 통화 내용이 들릴 정도인 협소한 병실은 불편했지만 차츰 익숙해져갔고 링거 맞고 아침저녁 엉덩이주사에 하루 세 번 약 먹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입원한 환자들을 보면 먼저 환갑을 넘겼다는 맏형뻘인 하마 같은 교통사고 환자와 외손자가 고1이며 이제 환갑이라는 젊어보이는 치타 같은 발목골절 환자, 5일 연휴를 이용하여 50여 년 만에 머리종기 수술을 받은 고향이 남도라는 얼룩말을 닮은 환자와 그리고 설날 조상님 전에 3배를 올리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하는 희끗한 숫양 등 이상 4명은 비슷한 연배에 거의 같은 시기에 입원한 환자들로 이심전심이랄까 동병상련으로 서로 발이 돼 주고 손이 돼 주었다.
 
 처음 일주일은 먹고 자고 시간이 유수처럼 지나갔고 어느 땐 아침 먹고 깨면 점심이었다. 마치 수면제에 취한 사람처럼 마취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2주째 접어들면서부터는 차츰 잠이 오지않는 시간이 늘어났고 화장실에서의 시간도 늘어가는 고역을 치러야했다. 가져간 책과 노트북은 참으로 시간을 잠재우는 마술사가 되었고 병실생활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서먹하던 병실은 입원사유와 애연으로 서로 인사를 나눔으로써 말문이 트였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치타와 얼룩말은 끽연 짝꿍이었고 하마는 무슨 사업을 하는지 외출이 잦았으며 순진한 숫양은 그저 병실지킴이었다. 목이 아프고, 발목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픈 모두 염좌로 진단이 나올 환자들이다. 비슷한 병명으로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룸메이트들이다. 그러니 어찌하랴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자면 사무실과 문학동인회에서 단체 병문안을 왔을 때 일제히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는 나중에 안 일이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서로서로 나누어주는 정이 그래도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병실문화에 익숙해 가는 또 하나의 모습은 어느 간호사가 주사를 아프게 놓느냐며 숫양이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숫양의 팔목 혈관주사를 잘못 놓아 팔목이 저려 다시 놓고 결국은 중간에 빼야 했던 일이며 치타와 같이 환자복을 입고 목발에 의지해 인근 식당에서의 사식을 먹으며 잠시 나누었던 살아온 삶의 이야기 등 처음 같으면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렇듯 시간은 변함없이 가고 있었다. 동안 얼룩말과 하마는 차례로 퇴원을 하였고 빈 침대엔 다른 환자들이 들고 또 나갔다.
 
 평소대로 졸리를 차안에 두고 주차하고 한 차 건너 매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다가온 악마는 내 무릎을 물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밀어보고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기계에 힘없이 무너지는 순간 고통보다 죽음의 공포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그렇게 무릎을 붙들고 뒹굴고 있었고 차주는 차주대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울고만 있었고 지나가는 고마운 분의 연락으로 가족이 오고 119에 실려 왔던 것이다. MRI와 CT촬영 후 다행히 뼈의 골절은 없고 우측무릎 염좌로 3주 진단이 나왔다. 휠체어 면허를 따며(?) 성실한 환자로써 물리치료와 병행치료로 결국 치타만 남겨둔 채 딱 14일 만에 퇴원을 결정하고 통원치료와 집 밥을 먹기로 했다. 이만한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싶다. 생애 처음 병원의 입원이라는 호사(?)도 누려보고 환자들과의 에피소드 등 좋은 체험으로 남아 그래도 소득이 있었던 병실생활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졸시 한편을 올린다.

 휠체어
 
 복도 끝 엘리베이터 타는 입구
 병실 안이나 문 앞에 그는 항시 그곳에 있다
 혼자 움직일 수 없는 그이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기다림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불 꺼진 병실 안에서 덩그런 복도에서
 고적하게 병실을 지키고 있는 그를 볼 때가 있다
 다정히 다가가 위무해주고 싶은
 그의 쓸쓸한 어깨에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
 그는 금세 활력을 되찾고 신이난다
 가진 것 배운 것에 구애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 주는 바다 같은 이
 어느 날 삶이 버거워졌을 때 나는 그를
 밀어주며 친구가 되어 주었지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긴다.’는‘액땜’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다가올 토끼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너무 아찔했던 액땜이 아니었을까?
글 : 차용길 (남동구청 출장소 근무)
http://blog.daum.net/ykc2735  
※ "소래나루 제7호(2011년)"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남동구 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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