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하사(下賜)하는 보약이면서 동시에 사약(死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맛본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승에 있으면서 평생 한 모금도 맛보지 못할지라도 저승에 들면 제삿날 그 감칠맛을 느껴야 하는 아이러니(Irony)가 있다. 그 것은 우리의 일상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가 있으니 어찌 곁에 두고 즐기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을 꼽으라고 하면 서슴없이 그 것을 꼽는다. 그것은 내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가장 잘 알며 나의 아픈 곳을 위무(慰撫)해 줄 뿐만아니라 미래의 나갈 길을 알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행복할 때 그 행복지수(幸福指數)를 배가시켜주는, 그야말로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名醫)인 화타(華陀) 보다 한 수 위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정서(情緖)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조상(祖上)이 세상을 떴을 때 간단한 묵념( 念)이나 요식행위 (要式行爲)로 사자(死者)와 영결(永訣)을 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망자(亡者)에게 그 것을 따라 올리고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려 저승길을 편히 가시라고 로(慰勞)한다. 어디 그뿐이랴, 매년 망자(亡者)가 하늘 여행 떠난 날을 기억(記憶)하여 친인척(親姻戚)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향을 피우고 그것을 따라 공손하게 올린다.
 
누구나 그것을 처음 접할 때 잊지 못할 아련한 향수(鄕愁)가 있을법하다. 나는 그것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처음 접하고 내 사고(思考)의 틀을 깨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그날 아침 어머님은 2되 들이 주전자를 내 손에 쥐어주시고 주막거리에서 그것을 사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들에 나가신 아버님의 새참을 내가 실 때 한 주전자 가득 그것을 챙기셨다. 나는 그때마다 어머니가 나에게 부여한 중대한 소임(所任)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주막(酒幕)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며 그것을 주전자 가득 담아주면 나는 신이 나서 집으로 향한다. 중간쯤 오다 사방을 살피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길가에 앉아 주전자 뚜껑을 열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대본다. 맛이 기가 막히다 못해 어린 영혼을 유혹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성질 급한 나는‘에라, 나도 모르겠다’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한 심정(心情)으로 주전자 꼭지를 입에 대고 말았다. 그리고 요즘 표현(表現)을 빌리자면,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술 취해 길 가에 갈지자로 누워있는 어린 아들을 보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하셨을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이지만 홀로 그 것을 마시며 빙그레 웃곤 한다. 지금도 어머니는 어린 손자들 앞에서 그때의 황당했던 일을 상기하신다.  곧 집안에 한바탕 웃음 꽃이 만발하고 나의 양쪽 볼은 한 여름 복숭아꽃 보다 붉게 물든다.
 
예전에 우리 아버님들은 노동의 고통(苦痛)을 견뎌내기 위하여 그것을 애용(愛用)하였다면 이즈음의 사람들은 육신(肉身)의 수고스러움 보다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하여 그것을 무분별하게, 자주 사랑하다가 탈을 내기도 한다. 60, 70년대 우리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무채색(無彩色) 계통(系統)의 텁텁하고 깔깔한 맛의 그것으로도 우리는 만족했다. 작금(昨今)의 일이 되어버린 지금에는 호박색(琥珀色)의 그것이 화려한 라벨(Label)에 고급스러운 병에 담겨 백화점이나 전문매장(專門賣場)에 당당히 진열되어 있다.
 
물 건너온 것들이 우리 고유의 그것들을 밀어내고 거만(倨慢)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화가 치민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참으로 마음에 드는 말이 있다. 말 뜻 그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풍토에서 자란 생산물(生産物)이 제격이다. 아담한 체격에 단아(端雅)하고 맵시 고운 한복(韓服)이 어울린다. 그런데 빈 부대 자루 같은 검정색 양복을 걸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양복 입고 갓을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병원(病院)에 근무했던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오는 응급 환자를 자주 목격(目擊)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응급환자의 절반 이상이 그것을 너무 사랑한 즉, 삐뚤어진 짝사랑에서 야기된 사고(事故)로 말미암은 환자들이었다. 그것을 남몰래 짝사랑한 결과(結果)는 너무 처참했다. 한 가정이 졸지에 풍비박산(風飛雹散)되고 식솔들은 긴 세월동안 방황하게 된다.
 
나 역시 남동구민의 삶의 질을 향상(向上) 시키고자 불철주야(不撤晝夜)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는 과정(過程)에서 밤늦도록 그것을 사랑한 나머지 자주 혼몽(昏)한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철없는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심정이 된 아내는 나로 인하여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 것은 인간세계를 지배(支配) 하려고 하늘이 내린 선물(膳物)이 아니라 나, 내 가정(家庭), 우리 사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가득 담긴 잔을 들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붙여“위하여!”를 외치는 낯선 광경이 언제까지 금수강산(錦繡江山)에 펼쳐질지 안타깝다.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어지면, 지게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메어가나. 유소보장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나무 숲속에 가기곧 가면 누른 해 흰달, 가는 비 함박눈 소소리 바람 불제 뉘 한잔 먹자할꼬. 하물며 무덤위에 잣나비 휘파람 불제야 누우친들 어이리.

경인년(庚寅年)이 저물어 가는 이때,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장진주사(將進酒辭)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글 : 박인동
※ 2010년 "소래나루"(남동구 공무원 문예동인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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